• 최종편집 2021-05-04(화)
 
★★★.. 오리(梧里) 같은 '정승'은 없는가?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 1547~1634)~
대위(大尉) 같은 계급에서 별 두 개 소장(小將)으로 파격 진급을 하고, 현지에 부임한 '이순신(李舜臣)'은 당시 '경상 좌수사 박홍'과 '경상 우수영 원균' 그리고 '전라 우수사 이억기' 여기에 '전라 좌수영 절도사'로 내려 왔으니, 예나 지금이나 군대 조직에서 파격적인 계급장을 달고, 내려온 '이순신'을 보고 이들이 가만 있었을리가 있었겠는가?
1597年(정유년) 2月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한산통제영' 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형장' 이 열리고, '선조'임금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문무백관(200名) 모두가 '이순신'은 역적이오니 죽여야 하옵니다, 하고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문무백관들 모두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 고 선조 임금(선조 임금도 속으로는 동조 함)을 압박하고, 심지어 '이순신'을 발탁해 주고, 6계급 파격으로 진급을 시키는데 크게 힘을 써준 '유성룡'까지도 '公은 公, 私는 私' 라고 하며, 이순신을 죽여야한다는 문무 백관들의 의견에 반대를 못했으니, 당시 '이순신'의 역적 누명상황이 어떠했겠는가를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데 왜? 이틀이 걸려도 '이순신'의 刑을 집행을 못하고 있었는가? 당시에 영의정 겸 도체찰사 (국가비상사태 직무 총사령관)인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이 '선조'임금의 어명으로, 임진왜란의 전시 상태에서 모든 권한을 쥐고 있었다. 그러니까 전시 상태에서 아무리 임금과 문무 백관들이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라고 외쳐도 '도체찰사'인 이원익의 승락 없이는 선조임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원익'은 거듭되는 선조임금의 형 집행 재촉에, 靑史에 길이 남는 그 유명한 명 대사. '전하께서 전시 중에 신(臣)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臣 또한 전쟁 중에 삼도 수군 통제사인 이순신을 해임 못하옵니다' 라는 '이원익'의 이 말 한마디에. 선조 임금도 체념을 하고, 드디어 이틀이나 걸린 '이순신' '국형장'에서 문무백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체찰사가 그리 말을 하니, 이순신이 죄가 없는가 보구나' 라며, '이순신'은 사형을 면하게 되었다.
자, 당시에 문무 백관 199名 對 1 즉, '이원익' 딱 한 사람만이 반대를 하여 '이순신'을 살려 낸 것이다. '安民이 첫째이고, 나머지는 군더더기일 뿐.' 자신을 낮추고 오직 나라와 백성만 떠받든 공복, ‘그가 있으면 온갖 사물이 제자리를 잡게 되는’ 소박한, 그러나 비범한 조선의 대표적 청백리 초가집 명재상 '오리 이원익' 대감.
세월이 400年이 지났건만, 시대만 변했을 뿐 정치권의 행태는 변함이 없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마음을 알아주는 딱 한 사람만, 있으면 외롭지가 않은 것이 본래 사내 대장부들의 기질이다. 그것도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전쟁 통에는 더하지 않았겠는가? 그래도, '이순신' 장군은 행복한 분이었다. 조선 500年의 상징 청백리 '오리 정승 이원익' 대감이 계셨으니..
오늘의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떤가요. '이원익(梧里)'같은 청백리 대감은 어디에 계신지! 歷史의 한 페이지를 생각나게 하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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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梧里) 같은 '정승'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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